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질문

무언가 끄적이고 싶은데 소재가 마땅치 않다.

나는 왜 이럴까? 의문점이 생기는 게 있어 동생에게 물어보려다 글을 쓰며 생각해 보기로 했다.

여느 남매들과는 달리 동생과 대화를 꽤 하는 편이다.

동생은 찐따 같기는 해도, 책을 많이 읽고 아는 것이 많아 고민거리가 생기면 종종 물어보곤 했다.

항상 말만 하지 말고 뭐라도 해보라며 타박하던 동생에게 글 쓰는 것을 시작했다며 블로그 링크를 보내주었다.

읽어보더니 글쓰기에 소질이 있단다.

아주 옛날에 '동생의 추잡한 만행'이라는 타이틀로 한 페이지 글을 써서 보여준 적이 있는데 그게 재밌었는지 그때처럼 써보라며 권하기도 했다.

그런데 이제는 나의 감정을 보관하는 냉장고의 기능이 현저히 떨어져서 신선하게 재료를 보관하지 못한다. 고로 그때와 같은 유쾌하고 생기 있는 글은 쓰기 어렵다는 얘기다.

글을 쓰면서 나의 감정을 곱씹으면 곱씹어 볼수록 바싹 메말라 있다는 것을 느낀다. 침울함의 파도가 밀려오다 깊은 바닥으로 꺼지는 기분이다.

글을 쓰는 과정은 확실히 좋다고 단언할 순 없어도 나쁘지 않은 느낌이다. 억지로 시작했던 독서와 자격증 공부보다는 훨씬 낫다.

그런데 쓰고 나면 혐오스러움이 밀려와서 온몸을 감싸는데 한마디로 기분이 아주 더럽다. 왜일까?

생각해 보니 그와 같은 기분을 느낀 적이 또 있다. 노래를 부르고 녹음해서 업로드했을 때였다.

사실 글빨이 괜찮다는 평에 대해서 쓰기에는 많이 부끄러운 감이 있지만, 노래는 꽤 부르는 편이라고 말할 수 있다.

케이팝스타나 보이스코리아 같은 오디션에 나갈 정도는 전혀 아니고, 걸그룹 리드보컬 정도 된다고 생각한다.

역시나 노래를 부르는 과정은 좋다. 그 순간만큼은 다른 생각 없이 몰입하고 즐긴다.

그런데 이걸 녹음해서 누군가에게 들려주거나 업로드 해놓고 들어보면 개똥같다. 저급하지만 개똥같다는 표현이 정확하다.

아마 내가 부른 노래를 이 블로그에 업로드하는 순간 노래를 꽤 부른다, 걸그룹 리드보컬 정도다 라고 썼던 표현은 삭제될 것이다. (..)

내세울 능력이랄 것도 없는 나에게 그나마 있는 장점인데도 그걸 드러내놓고 마주하는 순간 싫어진다. 왜일까?

 

동생에게 물어보려 한 것은 이것이다. 나는 왜 나의 글을, 나의 노래를, 나의 모습을 드러내길 싫어하고 마주하지 못하는 것인지.

나에게 피해 망상과 방어기제가 어느 정도 있다는 것은 알고 있으나, 그것과 연관이 있을까? 가능성이 있을만한 경우들을 생각해 본다.

누군가가 접하고 그것이 대단치 않은 것임을 말해주어 나의 환상이 깨지고, 자존심에 타격을 입을까 봐?

아니면 끝끝내 아무도 관심을 주지 않고 쓸쓸히 묻혀버리는, 혼자만의 생쇼로 끝날까 봐?

그도 아니면 누구에게도 상처받지 않기 위해 내가 먼저 나에게 원죄처럼 부여해버린 지독한 자기혐오에서 비롯된 것일까.

사실 이 질문의 정답을 알고 싶다기보다는, 이유야 어찌 됐든 기껏 시작했는데 유야무야 엎어져 버릴까 싶어 이렇게라도 해서 글쓰기의 생명 연장을 시도하고 있는 것일 듯하다.

자기혐오는 너무나 오래된 나의 습성이어서 이제는 이것을 단순한 질문 몇 개를 던지고 생각해 보는 정도로는 어찌할 도리가 없다.

그래도 이렇게 조금씩이라도 풀어내면서 타협점을 찾고, 그럴듯한 핑곗거리라도 붙여 '지속'하는 게 중요하지 않은가 싶다.

지속에 따르는 결과는 무엇일까 ㅡ 그것은 생각하지 않기로 한다. 지금은 그저 '지속이 목표'다.

 

2023.04.0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