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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타

벌써 현타가 온다.

사실 어제 첫 글을 쓰고 난 직후부터 현타가 왔다. 내가 쓴 글이 싫어졌다. 작심삼일 예언일지도.

무언가 잘해보려고 애썼던 시도조차 하찮고 유난스럽게 느껴진다. 난 과거에도 그와 같은 경험을 수십 번 했다.

이건 병일까?

오늘 하루 이런 저런 생각을 하면서 글의 소재는 제법 떠올랐다.

그런데 역시 글 쓰기가 싫어졌다. 왜냐하면 난 그 소재로 기똥찬 글을 쓸 자신이 없으니까.

쥐뿔도 없으면서 쥐어짜내는 쓸데없는 완벽주의에 스스로 몸서리 치다가 형식적인 위로를 한다.

'이 곳은 그저 나만의 공간이니까 신경쓰지 말고 마음대로 해도 괜찮잖아.'

내 마음에 와닿지 않는 기계적인 조언.

생각이 많아진다. 감정이 복잡하다.

내가 원래 생각이 많고, 감정이 복잡했는데 덮고 살았던 것인지,

무언가 해보려고 하니 생각이 많아지고, 감정이 복잡해진건지, 어느 쪽인지 모르겠다.

생각나는대로, 감정이 쏟아지는대로 글을 쓰면 정신이 분열된 글을 쓸 것만 같다.

아니, 사실 그렇게라도 할 수 있으면 다행일 것이다.

솔직한 인간이 되고 싶지만 나는 형식적인 인간이다. 그러다 또 스스로에게 외친다.

'평생 형식만 따지다 인생 마감할 거?'

그 외침만 십수년 째다. 나는 직시하지 못하고, 도피하고 방황하길 반복한다.

문득 내가 자신에게 화가 나 있다는 것을 알았다. 글을 쓰다 말고 잠시 그 이유를 생각해 보았다.

아. 할 일을 안하고 있어서였다.

이 시점에서 내가 할 일이란 자격증 공부하고 책 읽는 것인데, 그걸 오늘 안했다. 공부 하기가 싫다.

왜 공부 하기 싫지? 재미없어서 인가? 의무감에 시작해서? 그냥 게을러서?

본래 평소의 나는 이런 것을 생각해 보지 않는다. 내 안의 의무감을 담당하는 자아가 말한다.

'하라면 해. 생각할 필요 없어.'

이렇게 살아온 버릇 때문에 생각하는 게 힘들다. 하지 않는 것 보다 하는 편이 나한테 좋으니까. 그럼 펑펑 놀기만 할 것인가?

그럼 무엇이 나에게 좋다는 것인가? 내가 진정 오늘 펑펑 놀았는가? 놀았다는 것에 대한 죄책감은 어디서 온 것이지?

그래서 지금 난 무얼 해야하지? 무얼 해야만 한다는 강박일까?

무조건적인 의무감을 부여하여 행동에 옮기는 나의 이 방식이 하등 쓸데없는 건 아니다. 그게 내 부지런함을 만들었으니까.

그런데 한가지 부작용이 있다.

내가 무엇에 관심이 있고, 무엇을 좋아하는지, 무엇을 하고 싶은지 모르겠다.

삶은 고구마가 익었는지 젓가락으로 푹 찔러만 보고 먹지 않은 것처럼, 나의 모든 일들이 대개 그렇게 끝나버렸다.

고구마가 맛있는지, 내 입맛에 맞는지, 소화가 잘 되는지, 아니면 나에게 맞지 않는 음식인지, 감자를 삶아 먹는 게 나을지.

충분히 겪어보고, 음미하고, 느꼈어야 하는데 그런 경험을 제대로 쌓지 못했다.

이럴 시간에 글이라도 휘갈겨 보자. 그래서 글쓰기를 시작했으나, 글을 쓰면서 또 현타가 온다. (..)

쓰고보니 글이 참 추상적이다. 우선은 개념에 대한 지식이 부족해서 그런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누가 떠먹여 줬으면 좋겠다... 글이 길어지니 애먼 길로 튀어나가는 것 같아 여기까지.

 

2023.03.31